[10] 한재 신충우의 좌우명, 知行合一(지행합일)은…
#한재 신충우 파일 10
이글루스 등재 : 2022/10/25
티스토리 이전 : 2023/05/11
거실에
知行合一(지행합일) 액자를
걸어 놓고 지내면서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고 있다.
서울 자택 아파트 거실에
걸어두었던 액자를
최근에 별장 서재로 옮긴 것이다.
왕양명→단재→운아→한재
내가 서예가(운아)에 의뢰해
이 필묵(筆墨)을 받은 것은
초년기자시절로
43년 전인 1979년(庚申)이다.
신문기자로서
민족의 선구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지행합일의 정신을
이어 받아
정의구현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광주 주재기자를 통해
글제를 주고 글씨를 받아
표구해 사용하는 것이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작품(作品)으로
제품(製品)과는 구분된다.
늦게나마
이 기회에
운아(雲雅) 길덕남 선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예가 운아(雲雅) 길덕남 선생의 ‘知行合一’ⓒ신충우, 2023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중국 명대 중기의
유학자 왕양명(王陽明)에 의해 형성된
양명학(陽明學) 사상의 하나로,
지(知)와 행(行)이
모두 마음의 활동으로서 하나라는 뜻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아직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해
실천함으로써
지와 행이 일치한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지식과 실천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지식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고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다.
1남2녀의 내 자식들도
이를 가훈처럼 생각하면서 자랐다.
주자(朱子)나 육상산(陸象山) 등이 주장한
‘선지후행(先知後行)’에 대한 반대 개념이다.
선지후행이란
먼저 사리에 대해 알아야
사리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으니
아는 것이 먼저이고
실천하는 것이 나중이라는 개념으로
지식과 실천을 둘로 나눠 본 것이다.
언행일치(言行一致)도 어려운데
지행합일은 더 어려운 것이다.
생각과 말은
따로 노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한다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한말의 시대 급변을 경험하면서
개인의 수양을 강조하며
학문과 실천이 분리되는
주자학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밀려드는 학문과 문화를 수용하고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는
양명학으로
사고를 전환했던 것이다.
언론인이자 민족사학자이자
그리고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민족사학의 태두이다.
민족, 민족주의라는 용어는
대한제국기에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민족이란 단어는 초기에 ‘겨레’와 같이
혈연 공동체로서의 개념이 강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이 심화되자,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해 국권 회복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민족을 단위로
근대적 국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이념으로서
민족주의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면
조선 민족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니라.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느뇨?
깊이 팔 것 없이 얕게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외에는 비아라 하나니, …
(<단재 신채호 전집 (상)>, <조선상고사>)
단재 선생은
‘국가는 민족정신으로 구성된 유기체’라는
인식을 가지며 많은 사론을 발표했다.
그의 고대사 연구는
『대동역사』,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문화사』를 거쳐
『조선상고사』 저술을 통해서 완결됐다.
그는 이전까지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신수두 시대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삼한이 후삼한으로 이어지는
역사 계승 의식을 내세웠다.
이에 걸맞게 한민족의 역사 무대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만주를 비롯해
산서⋅하북⋅산동⋅강소성까지 넓혔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지행합일(知行合一)’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고구려의 고토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知行合一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으로는
세상을 개선해 나갈 수 없다.
할까말까 망서리는
우유부단한
햄릿형 지식인보다는
다소 경박하더라도
행동하는
돈키호테형 지식인이
세상을 바꾼다.
불의(不義)를 보고도
침묵한다거나 외면하면
그 사회는
퇴보될 수 밖에 없다.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먹물’로도 불리는
지식인들에게는
시대에 대한 소명이 있다.
<‘한’연구가/저술가 한재 신충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