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한얼 - (38) 아리랑(아라리)

아리랑은 많다.
2000년대 이후 대중가요만 보더라도
트로트, 댄스, 록, 힙합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창작아리랑이 있다.
그러나 아리랑은 본래 향토민요로 존재하던 것이다.
현재 향토민요 아리랑으로 알려진 노래는
긴아라리, 자진아라리, 엮음아라리 등 세가지뿐이다.
늘어지게 부르는 긴아라리, 이보다 경쾌하게 부르는 자진아라리,
앞부분을 긴 사설로 엮어나가다가 나중에 늘어지게 부르는,
곧 아라리의 가락으로 되돌아가는 엮음아라리가 바로 그것이다.
엮음아라리는 긴 아라리에 대한 변주로 부수적인 성격을 띤다.
나머지 아리랑은 모두 통속민요이거나 창작아리랑이다.
아리랑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Korea를 상징하는
우리 민족의 노래로 정위돼 있다.
심금을 올린다.
한(恨)을 예술로 승화시킨 ‘국민의 노래’로 한국인의 멋이다.
통상적으로 말하는 아리랑은 경기자진아리랑이다.
노랫말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이며
현재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기본 장단은 우리의 정서에 가장 잘 맞는다는 세마치 장단이며
현대적인 4분의 3박자로 부른다.
내용은 한말(韓末)에서 일제강점기를 통해
이 겨레의 비분을 표백(表白)한 것으로
지방에 따라 여러 가지 별조아리랑이 불리며
장단과 사설도 매우 다양하다.
1926년에 등장한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의 주제가로 불리면서
전국에 불길처럼 번져 일제 암흑기에 겨레의 슬픔과 울분을 달래 주었다.
아리랑의 어원은
‘아리다’라는 동사가 아니라 ‘아우르다’에서 비롯된 것이다.
슬픈 가슴을 어루만지며 한(恨)을 아우르겠다는 일종의 자기주문이다.
“십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라는 진술도 원망이 아니라
혹 발병이 나 다른 님에게로 가지 못하고 돌아오리라는 소망의 표현이고
실제로 님이 발병이 난다면 그 님의 발이 나으면 다른 님에게 갈 것을 뻔히 알고도
달려가서 다리를 치료해 주고 울면서 돌아서는 것이 우리 한국인의 심성이다.
아우라지는
아리랑의 원조 정선아리랑의 발상지로
강원도 정선군 북면 여량5리에 있는 나루터이다.
구절리에서 흐르는 송천과
삼척시 중봉산에서 흐르는 임계면의 골지천이
이곳에서 합류하므로
‘어우러진다’해 아우라지라고 불려지게 됐다.
향토민요 아리랑은 본래 강원도를 중심으로
그 인근지역의 산간지대에서 부르던 노래이다.
산간에서 나무하고 나물을 뜯는 등 임산물을 채취하거나
김을 매며 또는 노래 자체를 줄기기 위해
노는 자리에서 부르던 노래였던 것이다.
본래 후렴이 없는 노래였다.
이처럼 강원도를 중심으로 향토민요로 존재하던 아리랑이
19세기 말에는 서울에도 나타난다.
서울과 경기지역에 통속민요 아리랑이 형성된 것은 경북궁 중건 때.
황현의 『매천야록』은 1894년 2월에 고종이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긴 뒤
동궁을 수선하는 토목공사를 하였다고 전하면서 작업을 독려하기 위해
밤마다 불을 밝히고 광대들을 불러다가 신성염곡을 연주하게 했는데
그것을 일러 아리랑타령이라고 했다.
경기자진아리랑이 널리 유행되면서 소리꾼들은
또 다른 아리랑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아리랑을 만드는 일은 기존의 다른 아리랑을 가져다
손질하거나 변화를 주는 방법을 주로 취했는데
그 원천이 향토민요 아리랑도 있고 통속민요 아리랑도 있었다.
강원도아리랑, 정선아리랑, 해주아리랑, 밀양아리랑,
남도아리랑, 진도아리랑, 본조아리랑 등이 그러한 노래들이다.
이 중에 강원도아리랑은 강원도의 향토민요 자진아라리를,
정선아리랑은 역시 강원도의 향토민요 엮음아라리를 가져다
전문소리꾼들이 다듬어낸 것이다.
그리고 해주아리랑, 남도아리랑, 본조아리랑은 경기자진아리랑을,
밀양아리랑은 해주아리랑을,
그리고 진도아리랑은 남도아리랑을 각각 모체로 삼아 변화를 가한 노래이다.
이밖에도 경성방송국 국악방송 프로그램에는
경(京)아리랑, 영동아리랑, 영남아리랑, 금강산아리랑,
함경도아리랑, 경복궁아리랑 등 여러 아리랑이 보인다.
1930년 6월 조선총독부 기관지『朝鮮』(조선)에 쓴
김지연(金志淵)의 글 ‘조선민요 아리랑’에는
23종의 아리랑이 소개돼 있는데 이 중에 지명을 가진 것만 16종에 이른다.
아리랑은 1930년대 대중가요 전개의 가장 중요한 동력으로
통속민요가 대중가요로 자리를 잡아가던
19세기 후반에 등장, 1926년 이후
강한 에너지를 일으키며 통속민요의 대미를 이끌었다.
통속민요는 우리의 재래 대중가요로서
주로 대중의 유흥적 취향과 정서에 의해 소비된 노래이다.
이러한 면은 통속민요 아리랑의 경우에도 다르지 않다.
통속민요 아리랑이 아라리를 비롯한
향토민요 아리랑에 바탕을 두고 형성된 것이지만
삶을 말하고 드러내는 표백지향의 문화성은 수용하지 않았다.
‘아리랑의 원조’ 아라리는 전통사회의 피지배계급이 부르던 노래로
사회적 약자가 그들의 생활과 정서를 말하는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아라리는 기본적으로 표백지향의 노래로서 산간지역의 삶 및 환경과 맞물려
그 정체성을 형성하며 노래판과 일판에 두루 존재해 온 문화이다.
민요의 기능은 실무, 놀이, 표백의 세 범주로 구분되며
아라리는 이 가운데 표백기능이 활발한 노래이다.
따라서 아라리를 부르는 즐거움은 일단 무언가를
노래로 드러내 말하는 것으로 획득되는 것이다.
아라리(阿喇唎)는 불교용어로
교만하여서 모든 사람을 업신여기는 마음인데
강원도 산속으로 운둔한 고려인이
근세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일파를 이렇게 부른 것으로 보인다.
아라리는 민요 중에서 용도가 가장 다양한 노래이다.
일과 놀이에 관한 것으로 집약할 수 있는데
노래즐기기가 중심이 되며
다음으로는 모심기, 나무하기, 밭매기, 나물뜯기, 풀베기 등이 주류를 이룬다.
아라리는 빠르지 않기에 흥과 신명을 돋우기보다 차분하고 안정된 일상의 정서를 형성한다.
그리고 아라리는 장식음이 적고 음역이 좁기에
노래에 기량이 뛰어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도록 해준다.
아라리가 다른 노래에 비해 느리고 단조로운 것은
이 노래가 곡의 비중은 낮추고 대신 가사의 비중을 높인 것임을 의미한다.
노래도 말하기의 한 방식이다.
아라리의 분포지는 강원도이거나 아니면 강원도와 접해 있거나
그 연장지라는 것이다.
태백산맥을 근간으로 한 산맥분포와 아라리의 분포가 대체로 일치하는 것은
이 노래가 산간지역을 중심으로 존재했었던 것임을 말해준다.
그리고 아라리의 분포가 태백산맥과 그 지맥의 분포와 거의 일치하고 있음은
이 노래의 전파가 산맥을 통해 이뤄진 것임을 의미한다.
정선지방에서 발생한 노래라고는 하나
태백산맥의 동쪽 전역과 남·북한강 유역에 고루 분포하는데
이 넓은 지역을 아라리권 또는 메나리토리권이라 하여 다른 지역과 구별짓고 있다.
아라리는 강원도가 전승의 중심이 되는 민요로서
정선아라리의 노래명은 아라리전승지를 대표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재>
[참고 자료] 아리랑의 인류무형유산 등재는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정신이 담겨 있는 아리랑.
수백가지가 넘는 아리랑은 시대와 지역의 벽을 넘어
저마다의 가락과 가사로 희로애락을 전해왔다.
그래서 문화재청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두지 않기 위해
2012년 6월 ‘아리랑’이라는 후렴구가 있는
모든 노래에 대해 인류 무형유산 등재를 신청했다.
유네스코 심사소위원회는 아리랑이 이렇게 여러 세대를 거쳐
재창조돼 온 점 등을 인정해 ‘등재 권고’ 판정을 내렸다.
한국민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결속력을 다지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기 때문에 이점이 등재권고 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아리랑은 같은해 12월 5일
유네스코 무형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확정됐다.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세계무형유산)에는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2001) ▷판소리(2003) ▷강릉단오제(2005) ▷강강술래(2009), 남사당놀이(2009), 영산재(2009), 제주칠머리당영등굿(2009), 처용무(2009) ▷가곡(2010), 대목장(2010), 매사냥(2010) ▷줄타기(2011), 택견(2011), 한산모시짜기(2011) ▷아리랑(2012)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줄다리기(2015) ▷제주해녀문화(2016)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2018) ▷연등회(2020) ▷탈춤(2022) 등이 등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