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 신충우 파일 48

 

 

넓은 대청마루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

접선을 부치고 있노라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

 

한여름에 접하는

한국인의 운치이다.

 

오늘(10)

입추가 지난 말복인데도

폭염이 기승을 부린다.

 

접선(摺扇)

접었다 폈다 하게 만든

접이식 부채로,

접었다 펼수있어 접부채,

접어서 쥐고 다니기 간편하다는 의미의 쥘부채,

거듭 접는다는 뜻의 접첩선 등으로도 불리운다.

 

부채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의 자와

가는 대나무 또는 도구라는 뜻인

자가 어우러져 이루어진 말로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채는 뜻이다.

한자로는 ()’이라 한다.

 

부채는 전통적으로

깃털로 만든 우선(羽扇),

자루가 달린 둥근 부채인 단선(團扇),

접었던 폈다 할 수 있는 접선(摺扇),

모양이나 용도가 다른 별선(別扇)

크게 네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사람이 땅에서 살기 시작하면서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하였다.

그 가운데 무더위를 식히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바람을 이용하였다.

손바닥이나 종이 등을 가지고

바람을 일으키면 시원함을 느끼게 되는데

이러한 간단한 원리를 이용한 도구가 부채이다. 

 

부채의 재료는 크게

3년생 왕대나무의 속대와 겉대,

한지와 마지 등 종이와 천,

이외에 황칠, 들기름, 콩기름 등 색료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부채는 장르와 종류에 따라

쓰는 글귀, 그림이 따로 있고

때때로 재구성해 넣기도 한다.

 

가는 대오리로 살을 만들고

종이 또는 헝겊을 발라 부채를 만들었는데

가장 질이 좋은 부채는

전북 전주, 전남 남평·나주 등지에서 나온다.

 

전주의 합죽선이 선비들의 것이라면

담양의 접선(일명 민합죽선)

기능성이 강조된 서민들의 것이랄 수 있다.

 

 

김대석 명인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접선 부채<사진 출처>전남일보

 

 

전남 담양의 김대석(73)씨는

전남문화재 제48호 선자장 겸 제48-1호 접선장으로

우리나라 접선장의 대표격이다.

 

한국·중국·일본 등에서는

일찍부터 부채가 일상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서양 사람들은 동양에서 건너간 부채를

진주·비단 등과 함께 매우 귀중한 물건으로 여겼다.

 

15-16세기경부터 동양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교역의 물결을 타고 중국의 부채가 유럽에 알려졌다.

유럽에서 부채가 전성기를 맞은 것은 18세기부터이며

여성의 일상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식품이 되었다.

 

고정된 부채꼴의 부채에 혁명을 일으킨 것은

우리 조상들이었다.

고려시대에 세계 최초로 접선(摺扇)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접선  접을 접’, ‘주름 잡을 접으로 훈독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摺扇은 주름을 잡아 접을 수 있는 부채를 말한다.

 

 

생전에 모친이 사용하던 둥근 부채신충우. 2021

 

 

대부분 둥근 모양이었기 때문에

단선(團扇)’이라는 말이 생겼다.

 둥글 단이라고 훈독하며 원형이라는 뜻이 있다.

중국의 고전 사극에서 여인들이 들고 나오는 부채가

대부분 원형의 단선이다.

단선이 변화하여 반원(180°), 4분의 1(90°), 3분의 1(120°) 

다양한 모양의 부채가 생겼는데

여기서 180° 이하의 둥근 모양을 부채꼴이라고 하게 되었다.

 

청나라 학자 조익(趙翼)

접선이 고려로부터 들어온 것이라면서

명나라 영락연간(永樂年間·1403~1424)에 황제의 명으로

이를 모방하여 만들게 함으로써 중국에도 퍼지게 되었다고 하였다.

 

선풍기도

에어컨도 없던 전통사회에서

부채는 무더운 여름을 나기 위한

조상들의 생활필수품이었다.

특히 옛 선비들은 의관을 갖추고

손에 합죽선(접부채)을 들어야

비로소 외출이 가능했을 정도다.

 

그러나

신분에 따라

쓸 수 있는 부채 종류도 달랐다.

임금만이 백접선(접힌 칸이 100개인 부채)’을 사용할 수 있었고

사대부는 그보다 적은 사십선,

평민들은 단선인 방구부채를 사용했다.

 

일상에서 선풍기와 에어컨에 밀려난

부채는 민속 연희의 도구로서 활용되고 있다.

장르별로 보면

무당부채, 판소리 부채,

줄타기부채, 한량무부채 등으로

다양하다.

 

판소리는 부채를 든 1명의 소리꾼이

고수의 장단에 맞추어

(소리아니리(사설발림(몸짓)을 섞어가며

이야기를 엮어가는 우리고유의 음악이다.

 

소리꾼은 부채를 접어 소리를 하다가

어느 대목에서는 쫙 하고 펼쳐들며

장면의 전환이나 이완을 이끈다.

 

춘향전에서는 곤장이 되었다가

흥부전에서는 박타는 톱이 되기도 하며

심청전에서는 지팡이로 쓰이기도 한다.

한사람의 창자가 연행하는 모노드라마이니

천변만화를 부채 하나로 표현하며 연행하는 것이다.

필수품을 넘어 판소리의 구성요소인 셈이니

아니리 및 창()과 더불어 발림을 부채 없이 상상하기 어렵다.

 

발림은 농악이나 여타 풍물놀이의 춤사위를 가리키는

너름새를 말한다.

너그럽고 시원스럽게 말로

떠벌려서 일을 주선하는 솜씨라는 뜻도 있다.

유무형의 몸짓 모두를 부채가 이끌고 있다고나 할까.

 

판소리용 합죽선은

대선(30), 중선(27), 소선(25) 등이 대표적이다.

합죽선(合竹扇)이란

얇게 깎은 겉대를 맞붙여서

살을 만든, 접이식 부채이다.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열 폭짜리 평양감사부임도중에

판소리 공연 장면을 그린 능라도가 있다.

 

이 그림에서 유독 눈에 잡히는 것은

고수 앞에서 장삼자락을 펄럭이며

목청을 한껏 뽐내는 명창의 손에 들린 부채다.

 

이 부채가 바로 접선이다.

 

부채춤에 사용되는 부채도 접선이다.

 

한복이나 당의(唐衣)를 입고

양손에는 꽃그림이나 깃털로 장식된 화려한 부채를 들고

여러 아름다운 모양을 구사하며 추는 춤이

바로 부채춤이다.

1954년 김백봉이 창작한 한국의 신무용이다.

 

 

한국민속촌이 어린이날 공연한 부채춤<사진 출처>뉴스1

 

 

한국 연희사에서 부채는

무당춤, 탈춤, 줄타기, 판소리 등에서와 같이

소리를 하거나 춤을 추는 데 귀중하고 주요한 도구로 쓰였다.

그러나 부채춤은 부채를 주체로 바꿔 놓았다.

 

단순한 춤의 소도구나 장식품이 아닌

춤의 주제이고 모든 춤사위를 유도해 내는

기동인(起動因)으로 부채를 변화시킨 것이

바로 부채춤이다.

 

부채를 양손에 들어 접고 펴고 감고 어르는 등의

부채사위를 중심으로 춤추는 부채춤은

한국무용사의 근·현대 과정에서 서양식 무대로 옮겨지는

변모과정을 거쳐 예술적으로 새롭게 창출되어 발전한 작품이다.

 

부채춤은 한국 전통연희와 의례에서 활용되는

부채 이미지를 재해석하고

신체적 기법과 무용예술적 미에 부합되도록 승화시켰다.

 

부채춤이 표현하고 추구하는 미의식은

우리 춤의 전통적 깊이와 현대적 미의 오묘한 조화,

정재무용적인 것과 민속무용적인 것의 조화이며

형태적 특징은 중후함, 유연함, 탄력성을 들 수 있다.

 

 

 

부채전이 열리는 용산공예관<사진 출처>아시아경제

 

 

우리의 부채를 감상해 볼 수 있는

부채, 남실바람이어라전이

한남동 용산공예관(이태원로 274)에서

오는 8 29일까지 열린다.

 

선자장 김동식 장인의

백접윤선, 백접선, 염색백접선, 세 살조각황칠선,

쪽물염색선, 미니비단선 등 작품 3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선자장(扇子匠)

조선 시대 관아에 속해

부채를 만드는 일을 맡아 하던 사람을 말한다.

 

지난 2018 2월 개관한 용산공예관은

지하 3, 지상 4층 규모로 연면적 2800.

관람시간은 화~일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이 전시회를 통해

부채의 세계를 탐험해 보기 바란다

 

 

<‘연구가/저술가 한재 신충우

 

이글루스 등재 : 2021/08/10

티스토리 이전 : 2023/06/13

Posted by 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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