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충우, 2012
박작성(泊灼城)은 고구려 성으로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방어하는 성의 하나였다.
고려시대는 압록강 어구에서부터
평안북도의 북쪽과 자강도의 희천 지방, 그리고 평안남도의 북단을 가로질러
함경도의 동해에 이르는 천리장성의 시발점이었다.
이 고려장성은 1033년(덕종 2)에 시작해 1044년(정종 10)에 완성,
건립에 11년이 소요됐다.
북한의 국보 문화유물 제48호이다.
648년 고구려 보장왕 때
당(태종)의 설만철이 3만여 군사를 이끌고 박작성을 공격했으나
고문 장군이 오골성과 안시성에 주둔하던 군대의 지원을 받아 물리쳤다.
이 성에 관한 전쟁기록이다.
박작성의 지리가 압록강 입구에서 100여리 떨어진
강 북안의 험준한 산을 끼고 있는 지세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 위치는 현재 중국 단동시 동북 15km 거리에 있는 호산산성(虎山山城)에 비정된다.
박작성 인근의 압록강 하구에는
고구려의 대행성도 자리잡고 있어 박작성과 서로 조응하고 있었다.
호산장성은 약 500년 전 1469년 명나라 때 세워졌다고 한다.
중국이 만리장성의 동쪽기점이라고 주장하는 동북공정의 일환이다.
압록강 하류에는 오골성(烏骨城)도 있었다.
단동 동북방 약 20여㎞ 지점으로 압록강을 방어하는 고구려의 국방적 요충지이다.
이 지역에는 서울의 북악산과 비슷한 형상의 바위산인 봉황산이 펼쳐져 있다.
이 산의 품 안에 고구려군 10만이 주둔하던 천혜의 요새 오골성이 있었다.
지금은 중국 선양군구의 대군이 이 오골성 자리에 곰처럼 웅크리고 있다.
<단동에서 대한국인 한재 신충우(저술가)>
이글루스 등재 : 2012/05/02
티스토리 이전 : 2023/06/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