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 신충우 파일 85

발해전도 <그림 출처 : http://blog.naver.com/giragig>

 

누가 고구려의 계승자인가?

거란인가, 고려인가.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자다.’

고려의 서희(942~998년)가 요나라의 소손녕에게 강조한 말이다.

 

거란족은 말갈과 함께 고구려를 구성한 중요 축으로

고구려에서 유인으로 분류돼 세금 감면혜택을 받았고

고구려의 중요한 군사 자원의 하나였다.

 

그러나 947년 요나라를 건국한 거란이 나당연합군에 의해 패망한

고구려 유민들을 모아 건국한 발해를 926년 멸망시켰다.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는 15대 228년(698∼926)간의 역사를 남긴 채 사라졌다.

 

오랫동안 왕도로 사용된 상경용천부에는 도성터가 남아있다.

동서 길이가 약 4.6㎞, 남북 약 3.3㎞의 크기로 짜임새있는 도성이었다.

지금의 흑룡강성 영안현 동경이 그곳이다. 

 

이 때부터 우리는

고대 한국사의 근거지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상실했다.

통탄할 일이다.

 

신라의 간계로 대륙을 잃고

반도국가로 전락한 애잔한 우리 민족을

다시 대륙국가로 일으켜 세우려 했던 점에서

필자는 대조영의 발해를 높이 평가한다.

 

신라를 멸망시키고 발해에 이어 다시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가 건국하자 거란이 태조 때 화친을 청하며 말을 보내왔는데 

왕건은 발해를 멸망시킨 민족과 친교할 수 없다고 생각,

말들을 만부교 밑에서 굶겨 죽였다.

 

그후 거란은

고려의 북진 정책과 친송 정책을 문제삼아

세 차례에 걸쳐 공격했다.

1차 침입은 서희의 담판으로,

2차 침입은 양규의 선전으로 끝나고

3차 침입은 강감찬 장군의 귀주 대첩으로

대승을 거두었다.

 

1차 침입때 서희는 소손녕이 고려의 비위로 지적한

① 고려가, 거란이 점유한 고구려 옛 땅을 침식한 점과

② 이웃나라인 거란을 버리고 바다를 건너 송나라와 교빙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① 고려는 고구려의 계승이며,

② 고려가 거란과 교빙하고자 해도 중간에 여진이 가로막혀 있어 불가능하니

이 지역을 회복해 성보를 쌓고 도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응수했다.

 

이 담판의 결과

고려는 이른바 조공도(朝貢道) 개척을 명목으로

청천강 북쪽에 있는 압록강 동쪽 280리의 땅에 대한 점유를

거란으로부터 인정받았다.

거란은 1125년에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에 멸망했다.

중국에서는 여진족을 만주족이라 한다.

 

이에 따라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의 고토는 중국의 영토가 됐다.

우리는 조상의 땅도 지키지 못하는 못난 후순들이다.

 

고려가 신라로 인해 오랫동안 반도국가로 전락했던 우리 민족을

다시 대륙국가로 일으켜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묘청의 ‘칭제북벌론’, 최영의 ‘요동정벌론’ 등의 시도가 있었다.

 

이제는 반도국가도 모라자 남북으로 갈라져 반쪽국가가 됐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가 정말 고구려의 후예인가. 

 

<영안(寧安) 에서 대한국인 한재 신충우>

 

이글루스 등재 : 2012/05/12  티스토리 이전 : 2023/06/14

Posted by 한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