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 신충우 파일 9
“굿은 산 자들을 위해
죽은 자의 한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1994년 개봉된 임권택 감독의 영화
<태백산맥>의 끝부분에 나오는 대사이다.
민족주의자 김범우(안성기)가
무당딸 소화(오정해)에게
산사람끼리 죽이는 판국에
죽은 자를 위해 정성으로 굿을 하느냐고 묻자
소화가 김범우에게 하는 말이다.
굿은
한국 샤머니즘(무교)의 종교 제의로,
무당이 음식을 차려 놓고 노래를 하고 춤을 추며
귀신에게 인간의 길흉화복을 조절해 달라고 비는 의식이다.
2014년 개봉된 박찬경 감독의 영화 <만신>은
무녀 김금화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일제강점기,
14살의 금화 ‘넘세’(김새론)는 위안부 소집을 피해 시집을 가지만
시댁의 모진 구박과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친정으로 도망친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고 듣지 못하는 걸 듣는
남다른 아이였던 넘세는
고통스러운 신병을 앓으며 유년 시절을 보낸다.
1948년,
열일곱 비단꽃 같은 소녀 ‘금화’(류현경)는 운명을 피하지 않고
신내림을 받아 무당이 된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남과 북의 스파이로 오인 받아 수 차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산 자와 죽은 자의 아픔을 위로한다.
1970년대,
중년이 된 ‘금화’(문소리)는 만신으로서 이름을 알리지만
새마을 운동의 ‘미신타파’ 움직임으로 탄압과 멸시를 받는다.
여인으로서, 무속인으로서 힘겨운 삶을 살아가면서도
위엄과 자존감을 잃지 않던 그녀는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바꿔나가며
대한민국 최고의 나라만신으로 거듭나게 되는데….
‘굿 보러 가자' 해서 갔더니 영화를 틀고 있었다.
마지막 장면이 끝나며 나오는 천경자 선생의 말은
무속의 역할이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직감하게 한다.
무사한 영화 촬영을 위한 김금화 만신의 고사로 시작해
쇠걸립으로 끝나는 영화는 정말 한 차례의 굿과 같다.
영화 ‘만신’포스터<출처>네이버 영화
이 영화의 제목인
만신은 민속에서 ‘무녀’(巫女)를 높여 이르는 말로,
한자를 빌려 ‘萬神’으로 적기도 한다.
무녀의 무(巫)자는
하늘과 땅, 죽은 자와 산 자를 잇는다는 의미를
형상화한 ‘무당 무(巫)’다.
무당이란
신내림을 받아 신을 섬기며
굿을 하는 여성 무속인(巫俗人)을 뜻한다.
남성을 지칭하는 말로 ‘박수’라는 단어가 있다.
그러므로 원래 여성은 무당, 남성은 박수.
그런데 현재는 혼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무당을 정리하면
중부와 북부의 전통적 강신무인 무당 박수류와
남부의 세습무인 호남의 단골, 영남의 무당,
그리고 제주도의 심방이 있다.
무속(巫俗)이란
무당을 중심으로 해 전승되는 종교적 현상으로,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의 아득한 상고대로부터
한민족의 종교적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으며
또 외래종교가 들어온 뒤로도
민간신앙으로서
한민족의 기층적 종교현상으로 전승돼 왔다.
우리가 일상에서 자주 사용하는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속담은
우리의 무속에서 나온 말로
남의 일에 쓸데없는 간섭을 하지 말고
되어 가는 형편을 보고 있다가
이익이나 얻도록 하라는 말이다.
한국인의 종교관을 이해하려면
그 뿌리격인 무속을 알아야 한다.
고대 한국인의 신앙양상은
외래종교(유·불·도)가 전래되기 이전에는
무당으로 대변되는 무교(巫敎)였다.
고대 한국인의 신앙은
세 가지 요소로 구성돼 있다.
첫째, 천신강림과 산신신앙이다.
둘째, 인간의 승화와 곡신신앙(穀神信仰)이다.
셋째, 신인융합과 창조신앙이다.
무속에서 보는 우주는 천상·지상·지하로 삼분된다.
이들 3계의 우주층에는 각기 해와 달과 별이 있으며
천상이나 지하에도 지상과 똑같은 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무속에서는 인간을 육신과 영혼의 이원적 결합체로 보며
영혼이 육신의 생존적 원력(原力)이라 믿는다.
영혼은 형태가 없는 기운으로서 인간 생명의 근원이며
인간의 생명 자체를 영혼의 힘으로 믿는다.
영혼은 또 육신이 죽은 뒤에도 새로운 사람으로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거나
내세인 저승으로 들어가서 영생한다고 믿는 불멸의 존재이다.
무속에서는 내세에 극락과 지옥의 두 가지 형태가 있다고 믿는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명부로 가서 시왕을 차례로 거치며
생전의 선악을 심판받아 선한 일을 한 영혼은 극락으로 보내어 영생하게 하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의 영혼은 지옥으로 보내서 영원히 온갖 형벌을 받는다고 믿는다.
무속의 내세관 속에는 미래에 대한 종교적 구원관념이 없다.
기독교나 불교 등의 종교가 신앙과 종교적 구원에 의해 내세를 가지게 되는 데 반해
무속에서는 현세에서의 일정한 신앙이나
종교적 구원과는 무관한 자연적 순환의 의미로 나타난다.
즉, 사람이 죽으면 영혼으로부터 육신을 가지고 태어나게 한
근원지인 저승으로 돌아간다는 순환의 원리로 보았던 것이다.
샤머니즘의 샤먼(shaman)이라는 말은
시베리아의 퉁구스어로 망아(忘我)상태 중에
지식을 얻는 종교적 능력자를 의미하는 ‘사만(saman)’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샤먼을 중심으로 구성된 종교 형태를 샤머니즘(shamanism)이라고 한다.
샤먼은
인간계와 영계(靈界), 생자와 사자,
인간과 동물 사회간의 매개자로
수호령이나 수호신으로부터 힘을 받아
예언, 질병의 치료, 꿈의 해석, 악령이나 적으로부터 집단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샤먼은 신령과 직접 교류함으로써 힘을 얻지만
이 직접 교류에는 유형상 샤먼의 혼이 몸을 빠져나가
초자연계로 비상하는 엑스터시(ecstacy : 탈혼)타입과
신령이 샤먼으로 빙의(憑依)하는 타입이 있다.
아무튼 샤먼은 트랜스 상태에서 활동한다.
때로 샤먼은 반란자로서
피억압자들의 지배자 집단에 대한 종교적인 힘이 갖는
정치성도 무시할 수 없다.
퉁구스어족은
동부 시베리아, 만주 지역의 퉁구스 민족이 사용하는 언어 분류이다.
전통적으로 언어학자들은 퉁구스어족을 투르크어족, 몽골어족,
경우에 따라 한국어족, 일본어족과 함께 알타이어족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한민족의 기원도 시베리아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먹고 살던
고아시아계 민족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시베리아 원주민, 퉁구스계 제민족, 아이누족,
한민족을 뭉뚱그려 가리키는 표현이다.
아시아로 진출 이후 가장
먼저 북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서 정착한 이들로 추정된다.
언어학적으로는 이들의 언어를 고시베리아 제어라고 하는데
비교언어학적으로 친연성이 입증된 언어군은 아니다.
아울러 고조선의 발원지를 요서지역으로 비정하는 것이
2000년대 이후 고고학계의 통설이다.
요서지역은 몽골의 시초로 여겨지는 동호와 인접해 있으니
자연스레 교류가 잦았을 테고
부여, 고구려, 발해 역시 오랜 기간 동안 만주 일대를 통치하며
읍루, 거란, 선비족, 말갈, 돌궐 등 몽골계, 튀르크계, 통구스계 종족들을
포섭하거나 지배하면서
그들의 고유신앙을 융합시키려는 시도를 자연스레 했을 것이다.
그런만큼 한국인들의 전통 신앙이 텡그리 신앙의 한 분파였거나
최소한 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고조선이 멸망한 뒤 고조선 영역에서 세워진 나라인
고구려 또한 북방계 몽골, 튀르크 부족들의 가한신을 섬긴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에서와 달리,
일본에서는 신도 신앙의 형태로 나타난다.
무속은 제의 규모에 따라 분류하면
비손, 고사와 푸닥거리, 굿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가장 간단한 무속제의가 비손이다.
두 손을 비비면서 신에게 축원을 하는 가장 간단한 무속제의이다.
그리고 신에게 바치는 제수를 차려놓고
다양한 무구로 굿판을 장식해 수명의 무당이 종합적인 연행을 하는 것이
가장 큰 규모의 무속제의인 굿이다.
이 사이에 푸닥거리가 자리한다.
푸닥거리는 주로 가볍고 작은 병인 경우에 한해
잡귀에게 겁을 줘서 병을 쫓아내는 축귀(逐鬼)적 성격이 강한
약식 무속제의이다.
큰병이나 중한 병인 경우
푸닥거리보다 규모가 큰 치병굿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내 어느 지역에서나 행하여지는 무속의 기본제의로는
성주굿·삼신굿·지신굿·조왕굿 등 민가의 가신에게 기원하는 제의와
서낭굿·당산굿 등 마을의 수호신에게 기원하는 제의가 있다.
특히, 굿의 제의순서는
민가의 가신으로부터 마을의 수호신을 거쳐
우주의 천신으로 이어지며
일반 민간신앙을 집약, 체계화시키면서 무속의 굿은 진행된다.
따라서 무속은 민간층의 종교의식이 집약된 것으로
한민족의 정신 속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생활을 통해
생리화한 산 종교현상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한민족의 기층적 종교현상인 무속을
한국의 종교사적 입장에서 보면
외래종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한민족이 가지고 있었던
조직적 형태의 종교현상은 무속이라고 하는 귀결점에 이른다.
무속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세 가지로 그 존재가 분열된다는 믿는다.
혼과 귀와 넋이 그것이다.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넋은 땅에 돌아가며
귀는 공중에 떠돈다.
이 귀가 일반적으로 신주로서
후손들로부터 모셔진다는 것.
불교에서는
근본적으로 귀와 신을 다른 존재로 본다.
아귀의 줄임말인 귀는 육도 중생 중의 하나로
공포스럽고 기괴한 모습을 하고
염라왕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 불교의 시각이다.
신은 여러 가지 능력을 지닌 특별한 존재이기는 하나
기독교의 개념처럼 절대적인 존재는 아니고
정령과 비슷한 존재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불교의 귀신에 관한 개념 및 사고는
일정한 틀이 있지 않다.
두 개의 깃발이 달린 무당집ⓒ신충우, 2023
세 개의 깃발이 달린 무당집ⓒ신충우, 2023
무당집은
깃발로서 표시한다.
이곳에
깃발을 다는 순간
개인의 사가가 아니라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백성을 교화하는 등
소도의 성격을 가지는
중요한 곳이 된다는 의미이다.
소도(蘇塗)란
고대 삼한 때에 천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성지로
여기에 신단을 설치하고
그 앞에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를 세워 제사를 올렸는데
죄인이 이곳으로 달아나더라도 잡아가지 못했으며
후대 민속의 ‘솟대’가 여기에서 기원한 것이라고 한다.
내림굿을 하고
무당이 되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신당을 모시고
집 앞에다 깃발을
꽂는 것이다.
무속의 깃발은
신내림을 받은 무당과
하늘을 연결하는 표시로.
내림굿을 받은
무당이
신당을 차린 것을
표시하는 신간(神竿)이다.
신령을 모시기 위해
세워 두는 깃대가 그것이다.
무속의 깃발 중
백색기는
천신(天神)으로
하늘을 뜻하고
적색기는
지신(地神)으로
땅을 뜻하고
황색기는
인신(人神)으로
조상이나 영웅을 뜻한다.
점만 보는 집은
백색기만 단다.
굿만 하는 집은
적색기를 단다.
상기의
두 깃발을 단 집은
천지신명을 모신다.
이를 천황기라 하는데
상에는 백색기,
하에는 적색기를 단다.
보통은
이같이 두 개의 깃발을 다는데
이들 깃발 위에 추가로
태극기를 달아 놓은 집도 있다.
백색기에 卍(만)자를
적색으로 표시한 깃발도 있다.
세 개의 깃발을 단 집은
국가규모의 큰 굿을 할 줄아는
무속인을 표시하는 집이다.
굿은 사회적으로
가장 힘없는 사람들-
할머니, 아줌마, 아이, 환자들의 해방구다.
무당과 이들이
함께 웃고 울고 춤추고
음식을 나누면서
화해와 용서로 공동체를 다지는 것이다.
필자도 60년 전
유년기에는 그 일원이었다.
동네에서 굿을 하면
빠지지 않고 참석해
함께 신나게 놀았다.
현대 한국인들은
겉으로는 무속을 멸시하는 경향이지만
중요한 일을 앞두면
점을 보거나 굿을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사무실을 개소하거나
공장에 비싼 기계를 들일 때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고사를 지내는 민가의 풍습도
그런 기복신앙이다.
미술평론가 최광진의 백남준에 대한 평가로
한국인의 기층적 종교현상 무속(巫俗)에 대한
글을 마치고자 한다.
“한국인으로서
20세기에 가장 뚜렷한 족적은 남긴 예술가는 백남준으로
그의 국제적 성공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그의 예술적 뿌리는
어린 시절 체험한 한국의 무속문화에서 비롯해
산 자와 죽은 자, 이승과 저승을 소통시키는 무당처럼
그는 방울(거울) 대신 비디오(TV)를 이용해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소통시키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