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 신충우 파일 12

 

 

 

충청도에서는

농기구 키를 ‘치’라고 한다.

키라고 하면

알아 듣지 못한다.

 

유사한 발음의 체는

가루를 곱게 치거나 액체를 밭거나 거르는 데 쓰는 기구로,

얇은 나무나 널빤지로 만든 쳇바퀴에 말총, 명주실, 철사 따위로

그물 모양의 쳇불을 씌워 나무못이나 대못을 박아 고정해 만든다.

 

 

충청도에서 ‘치’라하는 농기구 키ⓒ신충우, 2023

 

 

키는 농기구의 한 종류로,

곡식 따위를 까불러 쭉정이나 티끌을 골라내는 도구이다.

한자로는

키 기(箕)로 표기한다.

 

까불다는 이 까부르다의 줄임말로,

키를 위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는 행동을 뜻했던

까불다가 차분하지 못하고 가볍게 행동한다는 의미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예전에는 알곡을 선별하기 위해

곡식을 키에 올려놓고 위아래로 흔들어 껍질을 날리곤 했는데

이때 곡식의 껍질을 까서 바람 부는 대로 날리는 것을 까부르다라고 했다.

 

키는

키버들이나 대를 납작하게 쪼개어

앞은 넓고 평평하게, 뒤는 좁고 우긋하게 엮어 만든다.

 

짜임새는 대나무바구니랑 똑같다.

과거에는 추수가 끝나면

여기에 곡물을 담아 키질을 하곤 했는데

이리저리 흔드는 과정에서 가벼운 쭉정이나

벼 이파리 같은것은 날아가거나 윗부분으로 모이고

아랫부분엔 곡물만 남는다.

공기놀이하듯 크게 쳐올려서

낱알 사이에 섞여있는 티끌을 날려보낼때도 사용한다.

물이 아니라 바람이 매개가 된다는 것만 빼면

비중차이로 원하는 물건만 남긴다는 점에서는

사금채취에 사용하는 패닝 접시와 비슷한 부분도 있다.

 

 

사파이가 내놓은 ‘싸개싸개 오줌싸개’<출처>알라딘

 

 

요즘은 완전히 없어진 풍습이지만

과거(1950년대~70년대)에는 어린아이들이 밤에 오줌을 싸면

키를 머리에 쓰고 이웃집에 소금을 얻으러 다니는 벌을 받곤 했다.

오줌싸개에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서

오줌싸는 일을 줄여보기 위한 의도로 행해졌으나

요즘에는 아동 학대에 해당해 없어졌다.

 

2020년 사파이에 의해 출간된

이춘희(지은이)와 김정한(그림)의

아동 동화 <싸개싸개 오줌싸개>에는

주인공이 오줌을 싸 고추를 내놓은 채

소금을 얻으러 다니며 창피를 당하는 내용이

자세하게 묘사돼 있다.

부모에겐 옛 추억의 향수를,

아이에겐 잊혀가는 전통 문화의 경험을 전해 준다.

 

<‘한’연구가/저술가 한재 신충우>

 
Posted by 한재
,

#한재 신충우 파일 11

 

 

 

5월 20일 신문에 보도된 뉴스다.

 

서울 관악구에서 웃통을 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던 남성이

처음 보는 여성에게 달려드는 등 행패를 부려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3월 관악구 길가에서 상의를 탈의한 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난동을 피운 A 씨를

폭행 및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입건했다고 18일 밝혔다.

경찰은 “시민들의 출근길을 망쳐놓은 사연을 소개한다”며

당시 상황이 담긴 폐쇄회로(CC)TV 영상을 유튜브에 공개했다.

 

필자가 이 기사에서

주목하는 것은 ‘웃통’이다.

 

웃통이란

사전적으로

1. 몸에서 허리 위의 부분과

2. 위에 입는 옷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여기에서는 두 번째 의미이다.

유의어로는 상의(上衣)가 있다.

 

‘웃통을 벗다’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으로

웃통과 벗다의 결합어이다.

때문에 웃통이라는 말은

‘상의를 벗다’라는 의미처럼 사용이 되고 있다.

영어 표현으로는

strip to the waist.

 

이 웃통이라는 말에는 사회적으로

남자에게만 한정이 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웃통을 벗었다는 말은 대체로 남자가 행위의 주체이다.

실제로

웃통을 벗는 것은 남자들의 일종의 전류물처럼 여겨져왔다.

 

대체로 남성미를 과시하는 의미가 많지만

이외에도 화가 많이 난 상태라든가 성질 뻗쳐서….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는 의미에서 벗는 장면들이 많이 등장한다.

예를 들면 영화 ‘아저씨의 원빈’처럼.

여기에 웃통을 벗는 남자가 몸짱 속성을 가지고 있다면

그야말로 여자들이 열광을 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보여 줄게 있는

근육질의 남성들이

웃통을 잘 벗는다.

남성미의 상징으로

왜소한 체격의 남성들은

웃통을 벗지 않는다.

 

 

웃통을 벗은 도올 김용옥 선생

<출처>유튜브 도올TV’/파이낸셜뉴스

 

 

도올 김용옥(75) 전 한신대 석좌교수가

강의 중 근육질의 몸매를 자랑한 동영상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 ‘도올TV’에

2022년 3월 9일 올린 영상에서

강의 중 상반신 탈의를 하면서

“내가 앞으로 몸을 만들 텐데,

그 전에 여러분들에게 내 몸을 보여드리겠다”며

“철학자의 몸을 보여드리겠다”고 했다.

뒤를 돌아 등 근육을 보여주고

힘을 주며 근육을 더 부각시키기도 했다.

 

도올은 2016년에도

한 방송에서 웃통을 벗고

푸시업 대결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었다.

 

중국은 우리와 다른 성격을 보인다.

굳이 따지자면 일상의 습관으로

더우니까 남 의식 않고 벗는 것이다.

 

중국 여행담 중

가장 꼴불견으로 꼽았던 것 중 하나가

대도시 한복판에서 남자들이

웃통을 훌러덩 벗고 거리를 활보하는 것이다.

중국은 2008년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당국이 금지시킨 바 있다.

 

중국에서는

이렇게

한 여름날 자신의 상반신을 노출한 채

길거리나 공공장소를 활보하는

중장년층 남성들을

방예(膀爷)라고 부른다.

 

방(膀)은

상방신 노출의 상태를 의미하며

예(爷)는

그 행동하는 주체,

즉 안하무인(眼下無人)한 사람

혹은 유유자적(悠悠自適)한 사람과

같은 뜻을 포함한다.

 

한․중의 수컷들의 행위가

상기와 같이 이렇게 다르다.

 

한국인들은 여름에

등목을 하기 위해

웃통을 벗는 일은 있어도

중국인들과 같이

벗고 다니지는 않는다.

 

<‘한’연구가/저술가 한재 신충우>

 
Posted by 한재
,

#한재 신충우 파일 10

 

이글루스 등재 : 2022/10/25

티스토리 이전 : 2023/05/11

 

 

 

거실에

知行合一(지행합일) 액자를

걸어 놓고 지내면서

좌우명(座右銘)으로 삼고 있다.

 

서울 자택 아파트 거실에

걸어두었던 액자를

최근에 별장 서재로 옮긴 것이다.

 

왕양명→단재→운아→한재

 

내가 서예가(운아)에 의뢰해

이 필묵(筆墨)을 받은 것은

초년기자시절로

43년 전인 1979년(庚申)이다.

 

신문기자로서

민족의 선구자였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지행합일의 정신을

이어 받아

정의구현을 실현해 나가기 위해

광주 주재기자를 통해

글제를 주고 글씨를 받아

표구해 사용하는 것이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작품(作品)으로

제품(製品)과는 구분된다.

 

늦게나마

이 기회에

운아(雲雅) 길덕남 선생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서예가 운아(雲雅) 길덕남 선생의 ‘知行合一’ⓒ신충우, 2023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중국 명대 중기의

유학자 왕양명(王陽明)에 의해 형성된

양명학(陽明學) 사상의 하나로,

지(知)와 행(行)이

모두 마음의 활동으로서 하나라는 뜻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아직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해

실천함으로써

지와 행이 일치한다는 것을 역설한 것이다.

 

지식과 실천은

둘이 아니라 하나로

지식은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고

실천을 통해 완성된다는 것이다.

 

1남2녀의 내 자식들도

이를 가훈처럼 생각하면서 자랐다.

 

주자(朱子)나 육상산(陸象山) 등이 주장한

‘선지후행(先知後行)’에 대한 반대 개념이다.

선지후행이란

먼저 사리에 대해 알아야

사리에 맞는 행동을 할 수 있으니

아는 것이 먼저이고

실천하는 것이 나중이라는 개념으로

지식과 실천을 둘로 나눠 본 것이다.

 

언행일치(言行一致)도 어려운데

지행합일은 더 어려운 것이다.

 

생각과 말은

따로 노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아무 생각없이 한다는 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단재 신채호 선생은

한말의 시대 급변을 경험하면서

개인의 수양을 강조하며

학문과 실천이 분리되는

주자학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고

밀려드는 학문과 문화를 수용하고

시대변화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을 강조하는

양명학으로

사고를 전환했던 것이다.

 

언론인이자 민족사학자이자

그리고 항일 독립운동가였던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민족사학의 태두이다.

 

민족, 민족주의라는 용어는

대한제국기에 처음 쓰이기 시작했다.

민족이란 단어는 초기에 ‘겨레’와 같이

혈연 공동체로서의 개념이 강했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의 국권 침탈이 심화되자,

제국주의 침략에 대항해 국권 회복을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민족을 단위로

근대적 국민 국가 수립을 목표로 하는 이념으로서

민족주의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역사란 무엇이뇨?

인류사회의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부터 발전하며 공간부터 확대하는

심적 활동의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며,

조선사라면

조선 민족의 그리 되어 온 상태의 기록이니라.

무엇을 ‘아’라 하며 무엇을 ‘비아’라 하느뇨?

깊이 팔 것 없이 얕게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선 자를 아라 하고

그 외에는 비아라 하나니, …

(<단재 신채호 전집 (상)>, <조선상고사>)

 

단재 선생은

‘국가는 민족정신으로 구성된 유기체’라는

인식을 가지며 많은 사론을 발표했다.

그의 고대사 연구는

『대동역사』, 『조선사연구초』, 『조선상고문화사』를 거쳐

『조선상고사』 저술을 통해서 완결됐다.

그는 이전까지

단군조선→기자조선→위만조선으로 이어지는

단선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신수두 시대에서 삼조선 시대로,

전삼한이 후삼한으로 이어지는

역사 계승 의식을 내세웠다.

 

이에 걸맞게 한민족의 역사 무대도

한반도에 국한하지 않고 만주를 비롯해

산서⋅하북⋅산동⋅강소성까지 넓혔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지행합일(知行合一)’하는

행동하는 지식인으로

항일독립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붙잡혀

고구려의 고토

여순감옥에서 생을 마쳤다.

 

知行合一은

오늘날도 유효하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으로는

세상을 개선해 나갈 수 없다.

 

할까말까 망서리는

우유부단한

햄릿형 지식인보다는

다소 경박하더라도

행동하는

돈키호테형 지식인이

세상을 바꾼다.

 

불의(不義)를 보고도

침묵한다거나 외면하면

그 사회는

퇴보될 수 밖에 없다.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행동하지 않는

지식은 지식이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먹물’로도 불리는

지식인들에게는

시대에 대한 소명이 있다.

 

 

<‘한’연구가/저술가 한재 신충우>

 

Posted by 한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