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재 신충우 파일 4945

 
 
 
 

 

 

김어준-신장식-주진우

 

대한민국 편파방송의 대명사격인

교통방송 편파 주역들이 하차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필자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왕의 옹립에 실패한

세력들이 반란을 일으켰던

영조시대의 이인좌 난이 머리를 스쳐간다.

 

과거의 왕조국가는

짐이 곧 국가라는 말처럼

왕이 주인이므로

그에 반기를 들면

반역이 되는 반면

현재의 민주국가는

주권재민(主權在民)으로,

국민이 주인이므로

그에 반기를 들면

반역이 되는 것이다.

 

국민(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 국민의 의사에 반하게

특정정파를 위해 편파방송을 한다면

광의로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이인좌 난()’에 비유해

그 대표자의 이름을 빌어

김어준 난()’으로 칭하고자 한다.

전자의 난()은 전쟁이나 병란(兵亂),

후자의 난() 구분된 지면(방송)’을 뜻한다.

 

딴지인가,

깐죽인가.

 

딴지는

일이 순순히 진행되지 못하도록

훼방을 놓거나 어기대는 것을 말하고

깐죽은

쓸데없는 소리를 밉살스럽고

짓궂게 들러붙어 지껄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편파적(偏頗的)이란

공정하지 못하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것을 말한다.

 

박원순문재인서울시의회 좌파장악교통방송 이념화

오세훈윤석열서울시의회 우파장악교통방송 공영화

 

 

대학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 과이불개’(過而不改)

잘못을 하고도 고치지 않는다는 뜻으로

여기에도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편파 논란에 휩싸였던

TBS 라디오 아침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이어

저녁 프로그램 신장식의 신장개업’,

아닌 밤중에 주진우입니다도 연말에 문을 닫는다.

모두 TBS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출처>연합뉴스

 

 

한국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신장식 변호사는 지난 12일 밤 신장식의 신장개업에서

“12 30일 신장식의 신장개업 문을 닫는다며 하차소식을 전했다.

이날 주진우씨도 방송 중 “(저의) 명확한 정확한 입장을 밝혔다

제작진이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선에서

김어준씨, 신 변호사와 함께 동반 퇴진할 것임을 암시했다.

앞서 이날 오전 방송인 김어준씨는

앞으로 3주 더 뉴스공장을 진행한다

신장식 변호사와 주진우씨도 어떤 말을 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두 사람은 하차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신 변호사는 이형기의 시 낙화를 낭독한 후

항의와 연대, 무엇보다 TBS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볼모로 잡은

작금의 인질극에서 인질을 먼저 살리기 위한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주씨는 특정인, 특정 프로그램이 밉다고 조직의 밥줄을 끊는다.

최악의 언론탄압의 단면이라며

오세훈 시장을 언론탄압의 주인공으로 기억하겠다고 밝혔다.

 

김어준의 뉴스공장 2016 9 26일부터,

신장식의 신장개업 2021 8 23,

아닌 밤중에 주진우입니다 2019 9 30일부터 방송을 이어왔다.

이들 프로그램은 높은 청취율에도 불구하고

편파진행이라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특히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이른바 생태탕 논란으로 여러 뒷말을 낳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취임 뒤

TBS가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교육방송 형태로의 전환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 의회 다수당이 된

국민의힘은 지난달 15 TBS에 대한 서울시의 지원을

2024 1 1일부터 중단하는 조례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서울시도 내년도 출연금을 올해보다 88억 원 줄어든 232억 원으로 책정했다.

 

이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지게 된

TBS가 뉴스공장을 비롯한 외부 진행자의

방송 프로그램의 대대적인 개편에 나서고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필자가 이인좌의 난 김어준의 난에서

주목하는 것은 이 난에 깊이 개입된 산동신()씨로

전자에는 신천영이, 후자에는 신장식이 있다.

 

이인좌 난을 청주지역에서는

신천영이 주도했다고 해 신천영 난이라 부른다.

 

이인좌 난신천영 난무신란반란 

 

이인좌 난의 중심은 청주읍성이다.

현재 청주읍성은 1910년대에 일제에 의해

모두 헐리어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읍성 안에 있던 동헌과 충청병영문이 남아 있다.

 

 

충청도 병마절도사 영문신충우, 2022

 

 

 

청주동헌 청녕각신충우, 2022

 

 

반란세력이 전국에서 제일 먼저

청주에 집결한 것은 청주지역이 화양서원만동묘를 중심으로 한

노론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남인과 소론의 불만이 팽배해 반란에 호응할 잠재세력이 많았다.

더욱이 청주는 영남과 호남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는 데다가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있어 전국 각지에서 봉기한

반란군의 집결과 서울 공격이 용이했기 때문이다.

 

노론의 영수

우암 송시열(1607~1689)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화양동서원은 1871

고종의 생부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서원의 오랜 적폐를 제거하기 위해

대대적으로 서원을 정리할 때

정리 대상에 포함돼 철폐됐다.

 

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은

노론이 지지하는 영조의 즉위로 위협을 느낀

소론의 과격파들과 남인이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고

소현세자(昭顯世子)의 증손인

밀풍군 탄()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해 일으킨 난이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했다고

정부정책에 사사건건 발목을 잡는

야당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인좌는 1728 3 15

청주읍성을 함락하고 서울로 북상했으나

24일에 안성과 죽산에서 관군에게 격파됐고

청주에 남은 세력도 창의군에 의해 무너졌다.

 

 

상당산성신충우, 2022

 

 

반란군이 최후까지 저항했던 곳은 상당산성.

이곳에 주둔했던 반란군은 3 24일 진압됐다.

그날 이곳에서 청주지역 반란군을 이끈

신천영과 이인좌 동생 등이 잡혀 목이 잘리었다.

 

신천영은 청주읍성 함락이후

반란군의 병사(兵使)로 임명됐다.

 

이인좌의 난으로

영조태실이 있던 청주는

청주목()에서 서원현()으로 강등되는

수모를 겪었다.

 

청주에 세거해온 산동신씨 가문은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면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신천영(申天永,?-1728)이 반란의 주모자로 참살되고

특히 단재 신채호 가문도

5대조인 신두모(申斗模,1759-1807)가 반란에 연루돼

조부 신성우(申星雨,1829-1907)에 이를 때까지

누구도 벼슬길에 나가지 못했다

 

반란의 주모자 신천영은

신경제(申慶濟)의 손자로

본명은 신복영(申復永)이다.

신경제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문과에 급제해

한성우윤(漢城右尹)사직(司直) 등을 역임했다.

숙종 15(1689) 송시열 탄핵상소를 올린 것이

영조 1(1725) 문제가 돼 유배를 간 적이 있다.

 

조부 때부터 가졌던

노론의 송시열에 대한 불만이

손자대에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산동(山東)신씨는 청주시 낭성 미원 가덕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신씨(高靈申氏)를 일컫는 말로,

산의 동쪽지역에 거주하는 신씨라 붙여진 이름이다.

 

 

고령신씨세거비신충우, 2022

 

 

보한재 신숙주의 손자 신광윤이

연산군 때 1504년 갑자사회로 옥고를 치루고

충청도 청주로 낙향했는데

그 후손 중에 이런 반란의 주모자가 나와

지금도 일가붙이들을 당황스럽게 한다.

 

조선시대 반역자는 3족을 멸했다.

신천영은 산동신씨 일가 중에서

가장 부끄러운 역사의 인물이다.

 

영조시대 신천영에게

삼국시대 축성한 상당산성이

이인좌 난의 최후 보루였다면

윤석열정부에서 신장식에게

1990년에 개국한 교통방송은

과연 무슨 의미일까.

 

일가의 조카이자

고등학교 후배가

좌파의 편파방송 선봉에

서 있다는 사실에

식자로서 매우 민망하다.

 

악명높은

사람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부모가 지어준 이름을

더렵혀서는 안될 것이다.

 

필자는 민주화유공자로서

()도 우()도 아닌 중도로,

서재의 거실에 걸어 놓은

正義具現’(정의구현) 액자처럼

국민의 편이자 정의의 편이다.

 

이 글을 마치면서

산동신씨의 일원으로

신천영 난으로 죽거나

중경상을 입었던 후손들에게

사학도로서

늦게나마

머리 숙여 사과를 드리고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이인좌 난 때 청주영에서 목숨을 잃은

충청병사 이봉상, 영장 남연년, 비장 홍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731년 삼충사(三忠祠)가 세워졌다.

그 사적비는 청주시 상당구 수동에 소재한다

 

 

<‘연구가/저술가 한재 신충우>

 

이글루스 등재 : 2022/12/14

티스토리 이전 : 2023/06/09

Posted by 한재
,

#한재 신충우 파일 20

 

 

 

아메리카대륙의 역사 앞에 서면

천주교와 개신교는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종교인가’라는 의문이 든다.

 

남의 땅을 침범해

‘신대륙’ ‘신세계’라 하는가.

‘신대륙’이 아니고 구대륙이고

‘신세계’가 아니고 구세계이다.

날강도짓이다.

 

이 대륙, 이 세계에

살고 있던

거무스름한 황갈색의 인디언(오)도

생물학적으로

짐승이 아닌 사람으로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이다.

 

똑같은 황갈색피부인데

누구는 신봉의 대상이고

누구는 정복의 대상이었나.

 

피부 색깔로 본다면

백인과 흑인을 뺀 나머지는

황인으로 보아야 한다.

중동-서남아-동남아-동북아-아메리카 원주민이

여기에 속한다.

엷은 황색인 동북아만 빼고

나머지 지역은 황갈색인데

서쪽으로 갈수록 거무스름하다.

 

거무스름한 황갈색의

갈인(褐人)은

서구의 인종주의자들이

만든 용어로

인종차별적인 뉘앙스가 강해

황인에 포함시킨 것이다.

 

황인종인 한국인의 경우

햇빛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구릿빛 얼굴로 흑인처럼 보이고

그늘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우윳빛 얼굴로 백인처럼 보이고

그 중간이 노란색이다.

갓 태어난 어린아이는

살갗이나 얼굴 따위가 하얗고 말갛다.

 

서구인들이 신봉하는

예수도 황갈색의 유대인이다.

천주교의 두 번째 성소로 알려진

멕시코 과달루페 대성당에 봉안돼 있는

예수 어머니 인물화의 얼굴도

황갈색을 하고 있다.

 

“마리아의 키는

1m 45㎝이고

피부색은 인디오처럼

거무스름한 황갈색이고

머리카락은 검은색이다.”

 

이탈리아 피사의 사탑처럼

왼쪽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는

멕시코시티 과달루페 대성당은

1695년 착공해 1709년 완공됐다.

 

 

과달루페의 성모 대성당에 봉안된 성모 마리아 성화<출처>나무위키

 

 

원래 마리아의 모습대로

그려진 것이다.

마리아는 중동의 유대인으로

황갈색의 피부에

검은 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천주교에 세워져 있는

성모 마리아상은 모두가

백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 왜곡된 것이다.

 

서구인들이

무시했던 역사의 현장에서

우리는 왜곡된 진실을 발견한다.

 

 

리처드 니브 전 맨체스터대학 교수가 복원한 예수의 얼굴

<출처>미국 WTVD 방송 기상학자 돈 슈웨네커 페이스북/아시아경제

 

 

영국의 법의학자

리처드 니브 전 맨체스터대학 교수가

2015년 재현한 예수의 얼굴도

담갈색 눈에 수염을 길렀으며

짧은 곱슬머리와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졌다.

이는 많은 종교적 예술품에서 묘사한

긴 갈색머리를 가진 백인으로서의

예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이스라엘 고고학자들이 갈릴리 호수 주변에서 발굴한

예수와 같은 시기에 살았던 3개의 셈족 두개골에

컴퓨터 단층촬영과

디지털 3D 기법을 활용해 예수의 얼굴을 복원했다고

데일리메일 등 영국 언론이 이 당시 보도했다.

 

니브 전 교수팀은 셈족 유골 분석을 통해

예수의 키가 약 1.5m로 작고

몸무게는 50㎏ 정도일 것으로 추정했다.

또한 예수가 30세가 될 때까지 목수로서

대부분 옥외에서 일했기 때문에 서양의 미술품에서

전통적으로 묘사된 것보다 피부색깔이 검고

근육질이었을 것이라는 이론을 제시했다.

 

황갈색의 유대인인

마리아와 예수 모자는

서양인들의 장난으로

백인처럼 각색돼 있다.

 

이런 종교에도

진실이라는 것이 있고

과연 도덕성이 존재하는가.

 

예수에 대한 백인 이미지 그림은

서구에서 오래전부터 그려왔는데

미국 화가 워너 솔맨(1892~1968)이 1940년 그린

‘그리스도의 머리(Head of Christ)’가

예수의 백인 이미지를 가장 극대화시켰다.

하얀 피부에 파란 눈을 가진 인물로

묘사된 이 그림은 10억회 이상 복제됐다.

보통 화가들은 예수를

자비스런 모습이나 고난당하는 얼굴로 그리는데

솔맨은 강한 백인 지도자의 이미지로 그렸다.

 

 

워너 솔맨의 ‘그리스도의 머리(Head of Christ)’

<출처>https://blog.naver.com/yang690805/222265685949

 

 

이탈리아 화가 소도마(1477~1549)가

르네상스 시대 그린 ‘Head of Christ’도

하얀 피부에 긴 머리를 하고 있다.

 

얼굴을

사실과 다르게

둔갑시키는 행위는

사기꾼들이나 하는 짓이다.

아무리 예술적 행위라도

한 인간의 초상화를

본질과 다르게 꾸며서는 안된다.

 

중동에서 발생한

기독교는 ‘서양의 종교’처럼

서양인의 입맛에 맞게

각 분야의 예술가들이 동원돼

각색 ‧ 치장해 미화돼 왔다.

근현대에는 영화가 한몫한다.

 

기독교 교리의 초석격인

십자가상의 예수가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주 건장한

서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다.

 

이것이 기독교의 현주소이다.

 

이탈리아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1454~1512)가

베네수엘라 등을 여러 차례 항해하고

1503년 <신세계>라는 수기를 출판했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이 신대륙을 ‘아메리카’라고 부르게 됐다.

 

독일의 지리학자

마르틴 발트제뮐러(1470~1520)가 1507년

그의 저서 <세계지 입문>에서 ‘신세계’을 발견한

아메리고의 이름을 기념해

그것을 아메리카라고 부르기를 제창했고

이것이 뒤에 널리 승인됐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디언이 살던 땅을

서구인들이 무단으로 침범해

‘신대륙’이니 ‘신세계’니 하다가

‘아메리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 하는가.

 

여러 역사가들이 확인했듯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는

‘신대륙을 발견’한 것이 아니라

1492년 10월 12일에,

지금 바하마제도라고 불리는 곳에

상륙했을 뿐이었다.

그는 1500년까지 세 차례나 카리브해로 항해했는데

끝내 그 지역을 ‘인도’라고 믿고 죽었다.

 

콜럼버스는 서구의 이주민들에게는 영웅이지만

카리브해의 여러 섬 사람들과

아메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침략자이자 약탈자였다.

 

아메리카 대륙은

서구의 앵글로족과 라틴족이

양분해 정복했다.

 

 

남북아메리카 지도<출처>www.jido45.com지도닷컴

 

 

아메리카대륙을

리오그란데강을 기준으로 보면

북쪽은

앵글로색슨족에 의해 정복돼

앵글로 아메리카라 하고

남쪽은

라틴족에 의해 정복돼

라틴아메리카라 한다.

 

앵글로색슨(Anglo-Saxon)족은

5세기에 독일 북서부에서 브리타니아로 건너온

게르만인의 한 파로,

원래는 잉글랜드의 색슨인을 대륙의 색슨인과

구별하기 위해서 사용됐으나

현재는 노르만이 영국을 정복하기 전의

영국인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현재의 영국 국민의 중심을 이루는 민족이며

앵글인·색슨인·유트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종적으로는 북방계에 속해

장신(長身) ·백색 ·금발 ·벽안(碧眼)에다

좁고 높은 코 등의 육체적 특징이 있으며

민족적으로는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게르만(튜턴)족의 한 파이다.

 

라틴(Latin)족은

인도ㆍ유럽 어족에 속하는 이탈리아인의 일파로

기원전 2000년대 인도유럽인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기원전 1000년경 북방에서 이탈리아 반도로 남하해

이탈리아 중부 라티움(Latium) 지역에 거주했다.

라티움은 고대 로마의 발상지이다.

라틴어는 로마의 팽창과 함께 확산됐다.

 

라틴족은 인도유럽어족에 속하는

이탈리아어파의 일파인 라틴어를 사용했다.

프랑스, 벨기에,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라틴아메리카의 정복에 나섰던 나라는

이 중에 스페인과 포르투갈(브라질)이다.

 

서양의 ‘정신문화’를 연

그리스가 남유럽에 있고

고대 그리스 문화가 로마와 유사점이 많다는 관점 때문에

그리스인을 라틴족의 한 갈래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은데

그리스인은 라틴족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민족이다.

헬라인, 혹은 헬라족이라고도 부른다.

그리스인은 유전적, 언어적으로

알바니아인, 아르메니아인과 매우 흡사하다.

 

주로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그리스어는 그리스와 키프로스에서 쓰는 언어로

인도유럽어족과는 상관없다.

헬라어, 헬라스어

또는 한자로 희랍어(希臘語)라고도 한다.

 

앵글로색슨족과 그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앵글로아메리카는 전형적인 선진국군이지만

에스파냐 인, 포르투갈 인의 라틴 문화가 지배적인

라틴아메리카는 대체로 저개발 단계에 있다.

 

리오그란데 강은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흐르는 강으로

길이는 3,051㎞이고

미국 콜로라도 주록키 산맥에서 발원해

뉴멕시코 주까지는 미국 영토 내에서 흐르다가,

텍사스에서 멕시코와의 국경을 이루며

최종적으로 멕시코 만의 하류로 빠진다.

 

종교적으로 보면

북쪽은 Protestant(개신) 아메리카로,

남쪽은 Catholic(천주) 아메리카로 볼 수 있다.

 

앵글로색슨족은

종교적인 이유로

북미로 이주해와

자의로 개신교를 믿는다.

라틴아메리카는

정복자의 강요에 의해서

타의로 천주교를 믿는다.

 

남북아메리카의 역사는

종교에 의해 시작되고

종교에 의해 진행되었기 때문에

종교를 빼놓고는 설명되지 않는다.

기독교 성서와 총을 들고

서구인에 의해 정복된 곳이

바로 아메리카대륙이기 때문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원주민에 대한 억압과 착취의 역사이다.

남미에서는 천주교 세력이

인디오에 대해,

북미에서는 개신교 세력이

인디언에 대해

가혹하게 억압하고 착취했다.

 

남북아메리카는

파나마운하를 기준으로

북쪽은 북아메리카,

남쪽은 남아메리카로 보는 것이다.

 

파나마 운하는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 대륙을 연결하는

파나마 지협을 종단해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약 80㎞ 길이의 운하로

1914년에 개통된 뒤 미국이 관할하다가

1999년 12월 31일 운하의 전권을 파나마에 이관했다.

 

멕시코를 포함한

중남미는

여러 피부 색깔이 뒤섞여

‘무지개인종’이라고 불린다.

 

후대에 숨어있던

어떤 색깔이 나올지 잘 모른다.

혼혈은 누가 가장 먼저 시작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메리카대륙의 혼혈역사는 콜롬버스가

히스파니올라섬에 도착하자 마자 만들어졌다고 봐야한다.

심지어 도착 10달 정도 후에

혼혈아가 태어났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

바하마 제도의 히스파니올라의 원주민 인구는

30만 정도로 추산하는데

홍역, 천연두, 성병 등 각종 질병으로

콜럼버스가 도착한 이후 2년 만에 10만 명이 죽고

종국에는 500명만 살아남게 된다.

 

결국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데려오게 되었고

지금도 히스파니올라 섬에 있는 국가인

아이티와 도미니카 인구의 대부분은

이때 데려온 흑인들의 후손이다.

 

혼혈(混血)이란

다른 인종이나

다른 민족의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말 그대로 피(혈통)가 섞였다는 뜻으로,

국제결혼이나 인종간 연애 등을 통해

자녀의 혈통이 섞이면서 발생하게 된다.

 

라틴 아메리카는

혼혈에 대한 개념이 없는 북미보다

피부색에 의한 인종구분이 확실하다.

백인, 인디오, 흑인 삼원색 간의 혼혈을

메스티소, 물라토, 삼보 등으로 부른다.

이제는 그 혼혈들마저 피가 서로 섞이면서

너무 복잡하게 섞여져

예전만큼 그 구분의 분류가 쓰이지는 않는다 한다.

 

◇메스티조(mestizo) = 백인 + 인디오

메스티조는 백인과 인디오의 혼혈로,

라틴 아메리카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여기서 ‘인디오’란 북아메리카의 ‘인디언’과 구별해

중남미의 원주민을 지칭하는 말이다.

 

◇뮬라토(mulato) = 백인 + 흑인

아프리카계 흑인과 백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특히 카리브해와 브라질에 많이 분포한다.

브라질의 경우 뮬라토가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삼보(Sambo) = 인디오 + 흑인

라틴 아메리카의 원주민인 인디오들과

흑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로,

중남미의 소수인종이다.

 

일단 중남미 주민들의 근간은 이곳의 원주민들이다.

이들은 주로 멕시코, 페루 등

주로 적도권 중아메리카 쪽에 많이 분포했기 때문에

남아메리카에서도 북쪽으로 갈수록 이러한 형질이 두드러진다.

 

그 다음은 백인으로

이베리아 반도에서 건너온 스페인과 포르투갈계가 있다.

캐나다와 미국의 경우

여성 이민자의 수가 적지 않았던 것과 다르게

스페인과 포르투갈 식민지들은

19세기 중반까지는 이민 인구 대부분이 남성이었다.

중남미의 백인 남성들은 주로 원주민 여성이나

흑인 노예 여성과 혼혈이 이루어졌다.

중남미에 유입된 흑인들은 주로 서아프리카 출신이었다.

 

19세기 말 이후로

아르헨티나/우루과이 및 브라질 남부를 중심으로

이탈리아인, 독일인 이민자도 적지않게 유입돼

만만찮게 인종이 뒤섞인 이들이었다.

근대 브라질에는 일본인 등이 적지 않게 진출했고

 

이러다보니

남아메리카 서부는 메스티소들이 주를 이루고

남아메리카 동부 팜파스 지역은 백인이 많으며

중앙아메리카와 카리브해는 물라토들이 주를 이루는 상황이다.

중남미 국가들은 인구 구조와 자원,

지배국, 독립 순서, 지형 등의 이유로 국경을 나누고 있다.

 

칠레에선 원주민 민족의 정체성을 부정하려는 학자들이

“너희가 무슨 원주민이냐.

너희도 우리도 모두 메스티소(혼혈)이다.

원주민은 이제 없다!”라고 우기는 데 혼혈 개념을 이용한다.

민족과 인종 개념을 멋대로 섞은 것으로

이 논리라면

세상 모든 민족은 혼혈로 다 사라졌어야 할 판이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국가의 출발점 자체가

여러 인종이 섞인 각국의 유럽인들이

신대륙으로 건너간 뒤 건국의 주축이 되고

아메리카 원주민, 오세아니아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남아메리카인 등 다양한 민족들이 모여서

세운 다민족, 다인종 연방 국가이다 보니

혼혈이 매우 일반적이다.

그래서 미국인이라고 하면

어떤 문화권이나 인종이냐를 특정하기 힘들다.

미국의 백인은 독일계가 많고

흑인은 조상이 서아프리카 출신이 다수이다.

 

미국에 거주하는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히스패닉(Hispanic)계라고 부른다.

다른 소수민족과 다르게

영어를 배우지 않고 스페인어를 사용하면서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

 

상기에서 언급된 것들은

서구의 기독교세력이

아메리카대륙을 정복하면서

생겨난 부작용이다.

 

브라질 국가대표 축구팀의

피부색을 보고 있노라면

혼혈로 점철(點綴)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가 읽혀진다.

 

브라질 남자에게

지구상의 천국이란

흑인여성을 하인으로 삼고

백인여성과 결혼해

갈색피부여성을

첩으로 두는 것이라 한다.

 

 

투팍 아마루 2세가 들어간 페루의 500인티 화폐

<출처>https://blog.naver.com/llhsyy33/222075632227

 

 

남미에도

식민통치에 저항하다가

처형된 민족지도자가 있었다.

악랄한 기독교 정복자들에 의해

사지가 찢어지는 처형을 당했다.

1780년에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대항해 봉기하다가

처형된 투팍 아마루 2세로

아메리카 대륙의 히스패닉 사회에

많은 영감을 주었다.

 

라틴아메리카사람들에게는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

남아공의 넬슨 만델라에

비유될 수 있다.

페루의 화폐(500인티)에

그의 얼굴이 도안돼 있다.

본명은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캉키.

 

대한국인으로서 지지를 보낸다.

 

서구의 정복자들이

식민통치차원에서

들어온 종교를

독립 후에도

끊지 못하고 계속 믿고 있다.

누가 이들을

마야와 잉카의 후예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독일의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1818~1883)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이라고 주장한 것처럼

(religin is the opium of the people)

종교는 정말로 아편- 마약처럼 보인다.

 

종교에 중독돼

줏대를 잃고

정신적 노예가 돼

돈까지 갖다 받치면서

질~질~ 끌려 다닌다.

 

그러나

기복신앙을 갖고 있는

대한민국의 종교인들은

이와 반대로

결단력이 대단하다.

필요하지 않으면

과감하게 버리고 바꾼다.

 

어떤 사람들은

기복신앙을 ‘갈보신앙’이라 평가한다

신앙심보다는

시류에 따라 움직이는

종교인은 종교인의 절반으로,

국민의 약 15~20%정도로 분석된다.

 

조선 패망과 함께

500년 동안 신봉하던

유교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8‧15 해방과 함께

미군정에 업혀 들어온

개신교를 국민의 약 17%가

믿고 있는 현실이

바로 그 예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종교인은 약 40%선으로

대세를 결정하는 것은 비종교인이다.)

 

마르크스의 주장이

한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추신]

끝으로

이 글은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비종교인으로서 구독을 권한다.

 

기독교는

서구의 세계 정복 수단인가?

 

<‘한’연구가/여행작가 한재 신충우>

 

 

이글루스 등재 : 2023/01/25

티스토리 이전 : 2023/06/07

 
Posted by 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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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재 신충우 파일 19

 

 

 

1952년생 신충우는

‘한’연구가로서

우리의 얼과 사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지만

무신론자로서

어떤 종교도 믿지 않는다.

 

젊은 시절

경험삼아 호기심에

온갖 종교를 섭렵해 보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

 

객관적으로

맑은 눈으로

사실을 사실대로 볼 수 있어

연구에 공정성을 기할 수 있다.

 

가끔

책이나 자료를 분석하다보면

작성자의 종교관에 의해

사실이 왜곡 미화되거나

폄하된 경우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한국인의 맷돌ⓒ신충우, 2022

 

 

기독교인 중에

필자를 민족종교인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참고하시기 바란다.

 

나는

신(神)이란

인간이 만든 관념어로

‘허깨비’와 같은 존재라고

과학저술가로서

생각한다.

 

각종 종교의 교조는

신이 아니라 사람으로

생물학적으로 말하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이다.

호모는 속명이고

앞의 사피엔스는 종명, 뒤의 사피엔스는 아종명이다.

 

예를 들면

북한의 주체교가

김일성을 교조로

신격화한 것처럼

기독교의 예수도

이와같이

필요에 의해

영화 ‘다빈치코드’에서

언급된 것처럼

신격화된 교조라고

생각한다.

 

신을

믿든 안 믿든,

종교를

믿든 안 믿든

그것은

천부적인 자유이다.

 

굳이 신이 있다면

유신론자들의 마음 속에

있을 것이다.

 

우리 한국인은 약 60%가 종교가 없고

무신론자는 15%정도로 세계 5위권이다.

 

일반적으로

저학력‧저소득일수록

종교에 대한 의존율이 높고

고학력‧고소득일수록

종교에 대한 관심도가 낮다.

 

공산사회주의국가인 중국을 제외하면

그 다음으로

무신론자가 가장 많은 나라는 스웨덴.

 

스웨덴은

인류 문화심리의 종착역이라고 할 수 있다.

스웨덴 국민들이 종교에 관심을 두지 않는 점은

생활이 윤택해지고 취미와 여가를 즐기고

다양한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1인당 GDP가 증가할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종교인의 비중이 줄어든다.

여기에서 예외적인 국가는 미국과 중국.

미국은 1인당 GDP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인의 비중이 높고

중국은 1인당 GDP가 낮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인의 비중이 낮다.

 

GDP는 국내총생산으로,

일정 기간 동안 한 나라 영토 안에서

생산된 최종생산물의 시장가치의 합계를 말한다.

 

미국은

영국의 청교도인들이 개척한 국가로,

개신교가 이면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건국한지 올해로 246년 된

미국은

기독교 성서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선서를 하는

사실상의 개신교 국가이다.

 

중국은

공산사회주의 국가체제로,

원칙적으로 무신론 종교이념국가이다.

종교를 믿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포교와 선교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은 종교에 아주 민감해

종교의 자유를 인정한다고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지 못하는 통제와 제재가 많다.

 

미국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어떤 종교는

과거 조선시대의 한문서당처럼

가족의 생계수단으로,

세일즈맨이 물건을 강매하듯이

짜증나게 선교활동을 하고 있어

‘종교팔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인간은

욕망의 동물이기 때문에

헌신과 봉사로 임해야 할

종교가 생계수단이 되면

신도 한 사람 한 사람이

돈으로 보일 수 있다.

 

세습화, 기업화 등의 문제가

다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종교가 생계수단으로 전락하면

구조상 타락할 수 밖에 없다.

 

나의 연구소에도

가끔 종교팔이들이 나타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전라도말로 표현한다면

참으로 징한 무리들이다.

 

종교적인 노예로

측근하게 보인다.

 

필자는

마음을 내려 놓고 사는

요즘이 내 70생애에서

가장 행복하다.

 

여기가 천국인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는

요즘의 삶에 만족한다.

 

⓵자유

⓶자기만의 세계

⓷건강

⓸돈

⓹가족

 

행복감이란

스스로 느껴지는 감정인데

자유를 빼앗긴 노예들에게는

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는다.

 

편안한 마음이 들어야

마음 속에서 행복감이 올라온다.

 

무엇인가에 구속돼 있으면

이런 마음이 생기기 않는다.

 

이런 심리는 자유에서 온다.

 

시간에 쫒기고

사랑에 얽매이고

종교에 구속되고

권력에 압박당하는 등

나를 잃게 되면

이런 감정은

절대 생기지 않는다.

 

산 속에 들어가 사는

자연인들이 실증적인 사례이다.

 

이들은

속세의 모든 것

다 내려 놓고

오직 자아만을 가지고

자연과 더불어 산다.

 

   

<‘한’사상연구소에서 한재 자연경 신충우>

 

 

이글루스 등재 : 2022/05/05

티스토리 이전 : 2023/06/06

 
Posted by 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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